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이 곡의 초연 후 차이코프스키는 아우인 모데스트와 의논을 하였다. 그는 이 교향곡을 그냥 6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허전하여 어떤 표제적인 내용을 갖지 않은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모데스트는 한참을 생각하다 ‘비극’ 이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반대를 하였다. 이에 모데스트는 ‘파테티크! (비창)’을 생각해내고, 차이코프스키도 이것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스
곡의 헌정은 그의 조카인 다비도프에게 하였고,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1893년 초연되었으며, 초연 9일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마치 그의 레퀴엠과도 같은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추측이지만, 음악적 흐름에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언뜻 보이기도 하는데, 그가 동성애로 인하여 자살을 강요당한 것으로 추측되어진다.
표제음악은 아니지만 차이코프스키 자신은 이 교향곡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나타내려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작곡 중 스케치에 의하면 이 교향곡의 ‘주도적 핵심은 인생이다’라고 하며, 첫 악장은 ‘열정’, 두 번째 악장은 ‘사랑’, 세 번째 악장은 ‘실망’ 그리고 마지막 악장은 ‘소멸’ 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교향곡은 인생의 공포, 절망,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반대되는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비창적 정서를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4악장의 조용히 사라지는, 극히 온건한 속도의 연탄적이고 비통한 느낌은 죽음에 대한 그림자의 엄습을 짙게 그려내고 있다.
제목의 비창이란 숙명이며, 이것을 극복하려 고 3악장 같은 곳에서는 행진곡풍으로 발버둥을 쳐보기도 하지만 결국 4악장에 이르러 조용히 인간의 숙명적인 종말을 고하고야 마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작곡 당시 제정 러시아를 휩쓸고 있던 무겁고 답답한 사회 흐름 속에서 살아가던 민중 의 슬픔과 괴로움이 인간의 숙명과 교묘히 맞물 려 있다 할 것이다.
연주는 단연 러시아 지휘자의 대명사인 므라빈스키의 것을 들 수 있다. 그의 연주는 모두 5가지 정도가 알려져 있다. 멜로디야 시절 모노 녹음인 1946년 연주는 1악장의 아름다운 표현이 인상적이다. 또한 1949년 녹음도 있다. 그리고 DG 오리지널스 시리즈로 출반된 1956년 모노 연주는 LP 시절 전설적인 명반이라고 회자되던 것이다. 소문대로 대단한 연주이며 좀더 세부적인 묘사에 신경을 쓴 명연주이다. 그리고 다음은 그 유명한 1960년 연주이다. 다소 거친 질감을 갖춘 오케스트라의 매력적인 음색과, 므라빈스키 특유의 박 력적인 연주가 차이코프스키의 본질을 꿰뚫은 러시아적 정감의 절대적인 명연주이다. 그리고 1982년 에라토의 실황 연주 역시 나이가 들어 다 소덜 극단적이지만 역시 므라빈스키의 아성에는 변함이 없다.
다음으로는 카라얀의 집념 어린 도전의 역사이다. 무려 6회에 걸친 도전이었고, 그중 1970년의 베를린 필과의 연주가 완성도 높은 것이다. 다소 러시아적인 정감이 희석되긴 했지만,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명연이다.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플레트네프 연주는 발매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충격의 명연주이 다. 그간 <비창> 연주는 므라빈스키의 독주에 카라얀만이 도전장을 내어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을 뿐인 상태였다. 그러나 플레트네프는 그가 조직한 신생 러시아 악단을 이끌고 대단한 성과를 올리는 명연주를 내놓게 된다. 시원스런 박력의 박진감과 세부적인 묘사의 섬세함, 그리고 러시아적인 내음의 향기 등 근래에 보기 드문 명연주를 만들고 있다. 플레트네프는 DG에서 전곡의 신녹음(1995)을 내놓았지만, 구녹음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시노폴리는 아주 특별한 해석을 들려준다. 치밀한 분석과 조탁을 통해 <비창>의 내재된 정서를 들추어낸 획기적 해석의 명연주이다. 정말로 그의 절묘한 기법에 감탄하게 되는 개성적인 명연으로 평가받고 있다.
명장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필라델피아의 연주는 NBC 교향악단과의 것(1947)을 훨씬 능가하는 명연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부드러운 균형감이 일품이다.

카라얀/차이코프스키 /비창

이외에는 쿠세비츠키의 역사적인 명연과, 푸르트벵글러의 개성적인 표현이 있고, 또한 러시아 출신의 마르케비치(PHILIPS, 1962)도 추천할 만하다. 아벤도르트(BERLIN CLASSICS, 1952) 의 연주는 다소 과한 신파조이지만, 그 넘쳐나는 슬픔의 그림자가 일품인 또 다른 명연으로 자리한다. 프라차이의 녹음(DG, 1959)도 주목할 만하다.
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얀손스의 전곡 녹음 중의 연주(CHANDOS, 1984)는 다소 억제된 듯한 것으로 상당히 답답함이 느껴지는 아쉬운 것으로 남아 있다.
최신 녹음 중에는 게르기에프의 연주(PHI- LIPS, 1997)가 떠오르는 연주로 각광받고 있는 훌륭한 연주이다. 그리고 번스타인의 연주(DG, 1986)는 가장 철저한 비창미를 들려준다. 진폭이 극단적이라 광적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이다. 더욱이 종악장도 굉장히 길게 연주된 희대의 초개성 연주이다.
절대적 가치의 므라빈스키의 명연을 먼저 추천하며, 플레트네프의 신명연과 강한 설득력을 발휘한 미묘한 감정 표출의 시노폴리, 그리고 집념 어린 카랴얀의 연주 중에서 선택하기를 권한 다. 역사적 명연 중에서는 토스카니니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연주와 아벤도르트가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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