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의 걸작들은 대부분 피아노 곡에 집중되어 있다. 그가 당대를 대표하는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란 점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 43은 4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더불어 그의 걸작에 속하는 것으로,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을 위한 형태이다. 라흐마니노프는 20년이 넘는 타향살이 중에 6곡 정도밖에는 작곡하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고향을 떠났을 때 나는 작곡한다는 희망을 버렸다. 고향을 잃은 나는 자신까지도 버린 셈이다” 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이 곡을 작곡한 것은 제18번 변주의 아름답고도 감미로운 향수에 찬 멜로디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곡의 작곡은 1934년 7월부터 한 달 사이에 걸쳐 스위스의 루체른 호반의 별장에서 작곡되었다. 초연은 그해 11월 볼티모어에서 작곡자 자신의 피아노와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루어졌다.
곡은 변주곡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사용된 주제는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스> 작품1의 제 24곡 단조이다. 이 주제를 모두 24번 변주하여 짧은 서주와 코다가 붙여진 형태이다. 또한 이 주제는 슈만, 리스트, 브람스에 의해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곡의 내용은 단순한 변주곡의 형태를 능가하는 명곡으로서, 복잡하고 기교적인 피아노의 화려함과 색채감이 풍부한 관현악의 향연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명곡이다. 특히 제18번 변주는 널리 알려진 곡상으로, 그 아련한 향수에 젖게 되는 진한 낭만적 감흥이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 한편의 영화음악이나 서정시를 연상시키는 듯한 서정미는 단연 일품이다.
이 작품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의 감흥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서정미가 돋보인 걸출한 것으로, 그 꿈속을 거니는 듯한 환상이 듣는 이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실 것이다. 바로 이 환상이란 작곡가의 고향에 대한 향수로 과거로의 회귀를 감지하게 된다.
연주는 먼저 작곡가 자신의 초연이 음반으로 남아 있다. 녹음연도 탓에 음질은 매우 불만족스 럽지만, 자작 자연의 소중한 유산으로 기록된다. 연주는 다소 세련되지 못해서 그 낭만적인 감흥 이 덜하기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담백한 멋 과 스토코프스키의 풍류적인 감흥이 인상 깊은 연주이다.
다음으로는 루빈스타인과 라이너의 두 거장에 의한 명연주를 손꼽을 수 있다. 루빈스타인의 피아노가 첫부분부터 아름다운 음색으로 압도적인 감흥을 전해주고 있으며, 강직한 연주 스타일을 보여주던 라이너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가 곡상을 더욱 북돋워주고 있다. 특히 제18번 변주에서 그윽하고도 환상적인 감흥이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더욱이 마지막 곡의 활기에 찬 열연 역시 감동의 깊이를 더하여, 이 곡을 대표하는 정상의 명연으로 자리하고 있다. 음질 역시 연도에 비해 만족할 만한 수준을 유지하여 음반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아쉬케나지는 이 곡의 연주를 두 번 남기고 있 으며, 훗날에는 티보데와 야블론스키의 피아노에 그가 지휘를 한 녹음을 남기고 있어, 그의 남다른 집념을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첫 번째 녹음은 앙드레 프레빈과의 일련의 협주곡 녹음 중의 일부로 주목할 만한 명연이다. 프레빈과의 연주는 반주의 충실함을 바탕으로 하는 피아노의 유려한 연주가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다소 여린 듯한 표현이 감촉 좋은 감흥을 뛰어나게 표출한다. 18번 변주의 감미로움도 일품이라 마음에 포근하게 다가선다. 가장 표준적인 명반으로 추천할 수 있는 흐뭇한 명연주이다. 한편, 하이팅크와의 신녹음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며, 다만 관현악이 좀더 편안하게 가다듬어져 있는 정도이다. 사실 구녹음과의 차이는 근소하며 음질이 나은 정도라서, 선택은 듣는 이의 몫일 것이다. 또한 아쉬케나지가 지휘를 맡고 다른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녹음들은 그의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보게 되는 것으로 연주 수준은 준수한 편이다.
루빈스타인과 녹음을 남긴 라이너는 카펠과도 녹음(RCA, 1951)을 남기고 있는데, 이것은 약동 감이 돋보인 왕년의 명연주라 할 것이다. 다만 현재에는 전집 속에 들어있어 구입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우승으로 유명한 반 클라이번과 콘드라신의 녹음(RCA, 1951)도 준수한 러시아적인 감흥을 선보인 훌륭한 연주이다. 왕년의 거장인 카첸은 볼트와의 녹음(DECCA, 1959)을 남기고 있으나, 다소 담담한 것이라서 감흥이 덜한 것이 아쉽다. 얼 와일드는 호렌슈타인 과의 녹음(CHANDOS, 1956)을 남기고 있으나 평범한 수준이다. 이외에도 루디, 얀도, 앙트르몽, 플레트네프(DG), 바샤리, 코쉬치, 다비도비치 등 이 있다. 한편, 제18번 변주곡이 유명하다 보니 이 곡만을 따로 연주하는 것도 다수 나와 있다.
음반은, 루빈스타인의 최고 명연을 제일로 추천하며, 다음으로는 아쉬케나지의 두 가지 명연도 추천에 주저함이 없다. 다음으로는 작곡가 자신의 기념비적인 연주도 주목할 만하다.
가장 통속적이며 낭만적인 감흥을 주는 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또 다른 환상의 서정미를 우리에게 감명 깊게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