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

한스 폰 뷜로는 그리그를 ‘북구의 쇼팽’ 이라고 칭하였다. 피아노에 관심이 많았던 그리그는 피아노를 위한 <서정 작품집>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은 단 한 곡만을 남겼지만, 이 곡은 <페르귄트>와 더불어 그리그의 이름을 드높인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작곡은 그리그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리던 윤택한 시절인 1868년 완성하였다. 초연은 이듬해인 1869년 코펜하겐에서 네오파르트(Edmamd Neupart, 1842~1888)의 독주로 행하여졌고, 대단한 갈채를 받아 성공적인 초연으로 기록되고 있다. 대부분의 명곡이 초연 때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곡은 초연자인 네오파르트에게 헌정되었다. 후에 그리그를 만난 리스트가 초견으로 이 곡을 연주하며 절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곡은 완전한 형식미를 갖추지는 못하였지만 매력적인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우선 독창적인 가락을 이용한 신독일악파 기법을 도입하고 있으며, 노르웨이 민요를 연상시키는 선율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특별히 첫 악장 도입부부터 피아노의 독주를 도입한 것은 쇼팽적이기보다는 리스트의 영향 탓일 것이다. 또한 같은 조성의 슈만 협주곡과 유사한 점도 보이고 있다. 작곡가 자신이 피아노의 명수라서 악기적인 자유분망함이 다채로운 표현을 보여주며, 기교적으로 리스트와 닮아 있다.
구성은 전 3악장으로 연주는 2, 3악장이 끊이지 않고 연주된다. 곡상은 2악장 아다지오의 명상적인 주제와 3악장 피날레의 폭발하는 듯한 강렬함이 깊은 인상을 준다. 낭만적 기조이나, 내연적, 사색적, 감상적인 면은 없으며, 북구의 대자연의 색조를 지니고 있는 명피아노 협주곡으로 자리하고 있다.

연주는 특별히 독보적인 명연주보다 보편적인 여러 가지 명연들이 자웅을 겨루고 있는 편이다. 먼저 리히터의 박력의 연주를 떠올리게 된다. 리히터 특유의 비르투오조적인 중량감이 전편을 지배하고 있으며, 진한 감성의 서정미도 주목할 만하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박진감이지만, 그 내면적인 아름다움도 잘 나타나 있는 명연주라 하겠다. 특히 호방함을 자랑하는 마타치치의 협연 역시 이 연주의 박진감을 더하고 있다.
요절한 천재 리파티도 주목할 만한 명연을 남기고 있다. 모노 연주이며 지휘도 평범한 수준이 지만, 피아노의 조형미에 넘치는 청순한 음색의 아름다움이 최고의 경지를 선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시적인 그리그의 서정미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 피아노의 섬세하고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도 박진감의 표출 역시 잘 드러낸, 잊지 못할 역사적인 명연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그 : 피아노 협주곡

기제킹은 1937년 로스바우드와의 연주(APR) 와 51년 카라얀과의 연주(EMI)를 남기고 있다. 완성도 면에서도 단연 카라얀과의 지휘가 더 나은데, 다소 흥분된 감정을 나타내고 있기는 하지만, 대가의 설렘을 명확하게 드러낸 연주가 또 다른 감흥을 전하고 있다. 더욱이 젊은 날의 카라얀이 펼치는 풋풋하고도 박진감에 넘쳐나는 유려한 지휘가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전체적인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도 있지만, 두 대가의 만남으 로 이루어진 것이라 흥분감에 넘치는 과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또 다른 명연주이다.
루빈스타인도 1942년 오먼디와의 모노 연주 (RCA)를 비롯하여 프레빈(DECCA)과의 연주도 있으며, 왈렌스타인과의 61년 스테레오 녹음 (RCA)도 남기고 있다. 루빈스타인만의 품위 있고 정감에 넘쳐나는 격조의 연주를 들려준다. 다소 담담한 표정이지만, 곳곳에서 드러나는 음색의 영롱함이 잔잔한 감흥을 주는 명연주이다. 음반이 널리 알려진 DG사의 게자 안다와 쿠벨릭의 연주는 보기보다 아쉬움이 많은 연주이다. 커즌과 피엘스타트의 연주(DECCA, 1959)는 감정을 다소 억제하고 품위를 강조한 아늑한 분위기와 차분한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화려함이 덜하여 강한 매력은 덜하지만 안정된 기조의 차분한 품격의 고전적 명연주이다. 요즘 연주가 중에서는 찌머만의 연주가 주목할 만한 명연주이다. 피아노의 선이 다소 가늘어 주는 느낌이 약한 것도 사실이나, 카라얀의 반주가 이런 취약점을 극복하고 있다. 특히 여린 감성의 표현이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3악장 피날레 부분의 웅장한 표현이 감동적으로 펼 쳐지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를 대표하는 좋은 음질의 신명연이라 하겠다.
페라이어도 콜린 데이비스와의 연주(PHILIPS, 1988)를 선보이고 있는데, 그런대로 무난한 수준을 보여준다.
라두 루프(DECCA, 1973)도 그만의 독특한 어법을 구사, 수준급의 연주를 펼친다. 코바체비치도 그만의 단단한 터치와 풋풋하고 청순한 서정을 잘 나타낸 수준급의 명연주이다.
이외에도 질버스타인(DG, 1993), 머스토냉, 세실 우제(EMI, 1980.84), 야브론스키(DE- CCA) 등은 평범한 수준이라고 하겠다.
중량감의 압도적인 연주를 원한다면 리히터를,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한다면 찌머만의 연주를, 그리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리파티의 역사적인 명연주를 권한다. 코바체비치, 커즌, 루 빈스타인의 연주도 빼놓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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